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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지역 미술사의 주체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5.12.17 조회수 : 25

[2025. 12. 17.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 오피니언 166번 게시글 내용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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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고, 복혜숙을 비롯해 당대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국기 아래서 나는 죽으리’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 작품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언론 보도대로 청주 ‘로케’가 사실이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청주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중일전쟁 발발 후부터는 더 많은 조선(인)의 희생이 요구되었다. 일부 예술인도 이에 협조했고. 모델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그는 한 시대의 ‘偶像’이 된 것이다. 

 다시 선전 이야기로 돌아가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사에서 근대 초기는 자료가 부족한 데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성이 있어 공백으로 남겨 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이 시기의 한국(중앙) 문학사나 음악사를 교과서를 통해 배운다. 덕분에 이광수도 알고 현제명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근대 초기 우리 지역에서는 어떠한 문학, 음악, 미술 활동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일찍 고향을 떠나 내로라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으로 성장해 간 유명인들만큼이나 이 지역에서 지역민과 또 제자들과 함께하며 지방의 척박한 예술 텃밭을 일구어갔던 그들도 함께 기억해 두고 싶었다. 지역 미술사에서만큼은 가능한 한 그들이 많이 등장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덕분에 조각가 김복진 말고도 충북에 연고를 둔 많은 미술인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영동 권구현의 존재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문학이나 음악 방면에서뿐만 아니라 ‘선전’ 출신 누구도 하지 못한 동양화, 서양화, 서예 세 영역에서 입선하고, 1세대 신문 만화가로 또 캐리커처 작가로도 활동했다. 예술적 재능도 부럽거니와, 무엇보다 그가 고향을 잊지 않았다는 것에 또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선배도 선생도 변변찮았던 그 시절에 그는 청주와 영동에서 미술 강연회와 전시회를 열고, 강습회도 개최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미술인도 그렇지만, 그때 그들은 훨씬 더 척박한 미술의 토양에서 살았다. 물감(안료)이며 캔버스, 도화지조차도 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시가 있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대로 그릴 수 없는 체제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왜 쿠르베(Gustave Courbet)나 도미에(Honore Daumier)가 되지 못 했느냐고 따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불우(不遇)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미술에 모두를 던졌다. 더러 오점과 얼룩을 남긴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출렁이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파도처럼 충북의 미술인들은 전에 없던 근대미술의 새 길을 개척해 왔다. 마침, 도립미술관도 건립된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는 미술관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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