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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타임즈] 선거, 민주주주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새글핫이슈
기고자 : 윤영한 수석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타임즈 게시일 : 2026.06.11 조회수 : 74

[2026. 06. 11. 발간]

 [충청타임즈 - 오피니언Ⅰ - 타임즈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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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히틀러는 쿠데타가 아니라 선거와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다. 당시 독일 국민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경제위기와 사회 불안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국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현상은 반복된다. 미국에서는 정치인보다 방송인과 사업가로 더 유명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수많은 논란과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다시 백악관에 복귀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대중의 분노가 전통적인 정치 경험보다 더 강력한 선택 기준이 된 듯하다.
    윤석열도 선거를 통해 선택되였다. 그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나 임기 동안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 그리고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헌정질서에 대한 파괴시도였다. 결국 선거는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민주주의의 성숙함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포퓰리즘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양극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누적될수록 유권자들은 복잡한 해법보다 강한 메시지와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도자에게 끌린다. 이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흐름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과 세대에 따른 투표 성향은 여전히 뚜렷했다. 그러나 과거처럼 특정 지역만으로 결과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연령, 성별, 계층, 자산 수준에 따라 정치적 선택이 갈리는 새로운 균열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정치 지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으며 사회적 분열 역시 심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선거를 둘러싼 정치문화의 변화다. 정책 경쟁보다 진영 대결이 앞서고, 미래 비전보다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가 정치적 동력으로 작용한다. 유권자는 정책보다 정체성을 선택하고, 정치인은 국민 전체보다 자신의 지지층만 바라본다. 민주주의가 숙의와 타협의 공간이 아니라 동원과 결집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역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조차 민주적 절차를 통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히틀러, 트럼프가 그랬으며, 우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선거는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그 권력이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지까지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선거 결과를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신성시한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역사 속 수많은 비극 또한 당시에는 국민의 선택이었다.


    이번 선거 역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민주주의의 위협은 독재자의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하기를 멈춘 시민, 결과만을 숭배하는 선거주의, 그리고 내 편의 승리만을 민주주의로 여기는 태도 속에서도 민주주의는 서서히 무너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시작되지만 투표함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선거 이후에도 시민의 감시와 비판, 책임 있는 정치가 지속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투표 그 자체가 아니라, 투표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민의 성찰과 참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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