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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도청사 자리 '잉어배미'와 지역의 근대 스포츠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6.09.10 조회수 : 7

앞선 글에서 1937년 완공한 충북도청사 건물은 논 위에 지어진 게 아니라, 훨씬 앞선 시기인 1930년 청주읍에서 조성한 청주시가공원을 철거하고 들어섰다는 것, 이 공원은 축구와 야구, 테니스 코트를 갖춘 운동장을 비롯하여 회의장, 도서관, 전시장 등의 복합 시설을 갖춰 1930년부터 1936년까지 약 7년간 주민의 여가 생활에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이 시가공원을 없애고 신청사가 들어선 1937년은 중일전쟁 발발(7.7.)과 함께 군국주의로 지역 문화 역시 소멸로 들어서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간에 누락된 지역의 공원 역사뿐만 아니라 체육사, 문화사 등이 추가 기술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도청사 자리와 체육사를 연관하여 살피면 다음과 같다. 개요를 정리하면, 문화동 도청사 자리는 1924년부터 1930년 1월까지는 동계 스포츠를 대표하는 빙상 스케 이트장으로, 시가공원으로 변모한 1930년 10월부터 청사 건립을 위한 터다지기 공사가 본격화하는 1936년 6월까지는 야구, 축구, 테니스, 씨름 등의 경기를 비롯해 청주체육협회가 주최한 청주시민운동회, 야학·사설 강습소 등이 주최한 운동회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 


 빙상장 시기부터 따지자면 약 12년간 주민들의 ‘생활체육’ 시설로, 또 선수들 참가 규모로 충청, 서울·경기 지역을 아우르는 中조선급(국토 분단 이전인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를 중조선, 북조선, 남조선, 서조선으로 구분했다)의 다양한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으니 중부권 스포츠 교류의 산실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근대 체육의 역사가 일천한 시기에, 수준을 갖춘 외래 선수가 함께한 경기는 볼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에 그것 자체로 흥미로운 이벤트였고, 아동, 청소년들에게는 생생한 체육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그럼,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1920년대, 빙상 스케 이트장 시절부터 더듬어보기로 하자. 1930년 4월 본격적인 시가공원 조성 시기 전까지 문화동 이 자리는 무논 지대였고, 지명은 ‘잉어배미’였다. 잉어는 주지하다시피 다산과 장수, 또한 등용문 고사가 말해주듯 출세와 성공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뒤에 붙은 ‘배미’는 사전적으로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구획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잉어배미’를 한자로는 ‘이어지(鯉魚池)’로 썼다. ‘이어’(鯉魚)는 잉어를, ‘지(池)’는 못을 가리키니, ‘잉어못’ 정도로 옮길 수 있다. 


 무심천 범람으로 이 무논들에서도 잉어가 많이 발견되어 그랬는지, 혹은 이 무논 중에서도 잉어가 많이 사는 별도 못이 있어서 그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심천의 배후습지로 수원이 풍부하여 잉어가 살기에 좋은 조건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잉어배미’든 ‘이어지’든 도청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동의 원래 이름이고, 의미로나 어감상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 잉어배미가 스케 이트장으로 활용되었다는 점 때문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겨울철의 무논이 아이들 놀이터로 활용된 것은 오래전 일일 것이나, 근대 스포츠인 스케 이트장으로 거듭난 것은 1924년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1923년 청주체육협회에서는 이 잉어배미에서 제1회 전조선 ‘빙상활주대회’를 열기로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해 늦가을에 수십 원 비용을 들여 명암저수지의 물을 끌어다가 바다와 같이 대놓고, 얼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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